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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관리자 작성일26-09-21본문
좋은 때도 나쁜 때도
그냥 그렇게 지나가는게 아니라고
뼛속까지 새기며 지나가는 거라고
- 박노해, <나무가 그랬다> 중에서
부모님 집 앞에 선 두 사람
둘째와 셋째는 부모님이 살던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. 초인종을 눌러야 할지,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지부터가 애매했습니다. 그 집은 부모님이 두 사람에게도 물려준 집이었습니다. 그런데 정작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첫째였고,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집 앞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.
상속 분쟁이라고 하면 흔히 재산을 더 받으려는 다툼을 떠올리지만, 이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. 형제 중 한 사람이 상속절차 처리의 모든 것을 도맡았고, 나머지 두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절차가 다 끝나 있었습니다.
세 남매, 그러나 서로 다른 정보
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삼 남매가 공동상속인이 되었습니다. 첫째가 세무사와 연락을 맡았고, 나머지 두 사람은 그 절차를 첫째에게 맡겨두었습니다. 부모님을 떠나보낸 직후라 다들 경황이 없었을 것이고, 형제 중 누군가 대신 나서 주는 것이 고마웠을 겁니다. 처음에는 그저 세금 신고와 재산 정리 정도의 문제라고 여겼을 것입니다.
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. 상속세 신고는 첫째와 세무사 사이에서만 진행되었습니다. 나머지 두 사람은 그 협의 과정에 실질적으로 끼지 못했습니다. 그리고 신고가 모두 끝난 뒤에야, 두 사람은 신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. 이미 세무서에 접수까지 끝난 서류였습니다.
"이 돈이 왜 부모님 채무죠?"
신고서를 확인한 두 사람이 가장 놀란 부분은, 자신들이 알기로는 부모님의 채무가 아니었던 돈이 상속채무로 신고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. 금액은 둘째 몫이 1억 원대, 셋째 몫이 수천만 원대로, 합하면 2억 원 안팎이었습니다.
두 사람에게는 이 돈이 도무지 채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. 가족 사이에 돈이 오간 사실 자체는 있었지만, 그것은 두 사람이 기억하는 한 부모님이 갚아야 할 빚이 아니었습니다. 그런데 세무서에 제출된 서류 위에서는 그 돈이 버젓이 채무로 적혀 있었습니다. 내가 알던 가족의 사정과 서류 속 가족의 사정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.
숫자보다 무거웠던 서류 한 장
그런데 이 사건을 들여다보다 보니 더 문제가 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. 바로 그 채무를 뒷받침하는 서류였습니다. 상속세 신고서에 채무가 올라가 있다면, 보통 그것을 증명하는 차용증 같은 문서가 함께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. 두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쓰지도, 보지도 못한 문서가 자기 이름으로 부모님의 빚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. 만약 정말 그런 서류였다면, 이 일은 더 이상 세금을 다시 계산하는 선에서 끝날 수 없었습니다. 그래서 정정 신고를 준비하는 것과 동시에, 그 서류의 출처를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였습니다.
세금 신고를 둘러싼 이 의심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,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모님 집 앞에서의 실랑이였습니다.
우리 집인데, 왜 마음대로 못 들어가나
부모님이 남긴 그 집을 첫째가 사실상 혼자 쓰고 있었습니다. 나머지 두 사람도 함께 물려받은 집이었는데도, 정작 그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. 세금 신고서 하나로도 이미 흔들린 신뢰가, 부모님의 빈집 앞에서 한 번 더 흔들린 셈입니다.
첫째가 막아서는데, 그래도 우리가 저 집에 들어가도 되는 거냐고 두 사람은 물었습니다. 공동상속인의 자격으로 평범하게 들어가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. 다만 문을 부수거나 한밤중에 몰래 들어가는 것처럼 무리한 방법을 쓴다면, 그때는 오히려 두 사람이 곤란해질 수 있었습니다.
그렇다고 반대로, 세 사람 모두가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두 사람이 첫째를 곧바로 내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. 억울한 두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을 겁니다. 우리도 주인인데, 왜 당장 나가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느냐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.
대신 대안을 말씀드렸습니다. 지분 과반수를 가진 두 사람이 먼저 그 집의 관리 방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, 이를 첫째에게 알린 뒤, 다른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맺고, 그 계약을 근거로 집을 넘겨받는 방안이었습니다. 여기에 더해, 상속이 시작된 시점부터 그 집을 혼자 써온 데 대한 사용료를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.
이 사안은 신고서에 첨부된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는 일과 부모님의 집을 되찾아오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습니다.
변호사의 마음에서
이 두 분이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, 뒤늦게 열어본 상속세 신고서와 마음대로 들어설 수 없었던 부모님의 집 앞에서였습니다.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, 이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.
부모님을 떠나보낸 직후 가족 중 누군가 세무사나 은행과의 연락을 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. 그런데 그 역할이 "내가 알아서 처리할게"로 바뀌고, 다른 상속인들이 신고서도 증빙 자료도 보지 못한 채 절차가 끝나버릴 때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. 상속세 신고서와, 증빙 자료들은 상속인 모두가 함께 확인하시길 권합니다.
유노이아 법률사무소, 장유미 변호사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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